


유화뿐 아니라 피카소의 다양한 화풍과 세계관을 볼 수 있었던,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보통 피카소라고 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들은 <아비뇽의 처녀들>, <우는 여인>과 같은 유화 그림일 것이다. 나 역시도 입체주의 화가로서의 피카소만 얕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를 보기 전에도 그런 생각과 기대를 하고 미술관 안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는 피카소의 유화보다는 도자기,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그림,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등이 담긴 여러 가지 화풍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피카소가 이렇게 다양한 재료로, 이렇게 다양한 표현을 했었다니!’가 이번 전시회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이번 전시는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에 있던 소장품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피카소의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에 담긴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명했다.
전시회 순서는 그의 나이대별로 진행되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상대를 만났는지, 어떤 마음의 변화로 이런 그림을 그렸고, 왜 이 화풍을 선택하게 됐는지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구성한 전시였다.
1.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으나 스페인 말라가 출신이었다. 절친했던 그의 친구가 죽은 후 암울해하던 피카소는 1904년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넘어오게 된다. 그 전에, 바르셀로나에서 그렸던 <파라렐로의 콘서트 카페>를 보면 20대였던 청년 피카소가 근대 미술의 새로운 화법과 구성에 대한 획기적인 시도를 하기 위해 풍경보다는 인물을 강조해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파리로 넘어온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대작을 완성하기까지 백 점이 넘는 습작을 통해 초기 입체주의 작업을 다졌다. <인물에 둘러싸여 있는 누드>, <사분의 삼 등이 보이는 여인의 누드>는 이 습작들 중 하나로 전시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이 테마에서 눈길이 갔던 작품 중 하나는 <기타와 배스 병>이었다. 1912년 피카소는 다양한 오브제를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을 도입한 후, 큐비즘에 대한 연구 방향을 틀었다. 나무판 위에 전나무, 신문지 조각 등을 조합해 전통적인 조각 기법을 버리고 여러 재료들을 조합한 새로운 방식을 탄생시켰다. 광고를 배우고 직접 실무에 참여하면서도 내가 관심이 없었거나,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분야가 의외로 나에게 도움이 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강의를 하러 오셨던 강사분들도 많이 보고,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피카소의 <기타와 배스 병>을 보며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았더라도 다양한 방향으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크리에이티브를 완성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피에로 복장의 폴>은 피카소의 첫 부인인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폴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서 짧게나마 피카소가 아들에게 가졌던 애정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보았던 <편지 읽기>라는 작품은 비슷하게 생긴 듯한 두 청년이 어깨를 맞대고 다정한 포즈로 앉아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려난 작품이다. 작품 속 두 청년은 피카소와 피카소의 절친이었던 시인 기욤 아프리네르로 추정된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 작품을 보며 같이 공모전에 참가하고 있던 팀원 중의 한 명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생각나 회의에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이 테마에서 내가 제일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은 <얼굴과 프로필>이었다. 왼쪽에는 창문 전체를 뒤덮은 그림자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정면을 보는 인물이 표현되어 있다. 피카소의 그림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 입체적인 화풍을 볼 수 있듯이, 세 개의 눈동자와 두 개의 콧구멍, 머리카락을 통해 정면과 측면을 모두 표현하려고 했던 부분이 돋보였다.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억제된 생활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를 보인 작품을 보며,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크리에이티브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볼라르 연작
볼라르 연작은 유화로 그림을 시작했던 피카소가 판화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에, 1930년대 볼라르의 부탁에 의해 피카소가 제작된 연작이다. 볼라르 연작의 주제는 크게 렘브란트의 환상이 깃들어 있는 조각가의 작업실과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로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3점의 볼라르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다른 화풍이 보여 그때 피카소가 어떤 미를 추구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눈이 먼 미노타우로스>였는데, 똑같이 보이는 두 작품을 자세히 보니 밤의 풍경과 낮의 풍경을 담은, 배경이 다른 <눈이 먼 미노타우로스>를 표현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4.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내가 알고 있던 도자기란 그저 그릇이나 화병이었는데, 전시를 보고 피카소가 만든 도자기는 조금 많이 달랐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 남부에서 수십 년에 걸쳐 약 4,500점이나 제작했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도자기 작품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스갯소리로 피카소 같은 천재랑 동시대에 살면 나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사나, 라고 했다는 예술가의 말이 떠오를 정도다. <정명,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 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이라는 작품을 보면 보통의 그림처럼 2차원이 아니라 도자기를 감싸고 있는 유리를 빙 둘러가며 보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을 돌면서 도자기에 표현된 여러 색감들을 감상했다.
5. 피카소와 여인
피카소는 꽤 많은 작품에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을 담았다. 이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여인 중 한 명인 마리테레즈는 1930년대 전반기에 주요 모델로 등장한다. <마리 테레즈의 초상>을 보면 마리 테레즈가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데, 그 옆으로 가 <시계를 찬 여인>을 보면 목을 길게 빼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리 테레즈가 이렇게 우울하게 표현된 작품은 몇 없다고 한다. 같은 대상을 그려도,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광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같은 광고를 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광고의 재료를 볼 때도 이건 이렇게 해서 이런 방식으로 광고에 활용해야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로 아예 다른 부분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대상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를 회의 시간에 매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6.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가 한국과 관련된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조금 놀랐는데, 시대적 배경을 보니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했던 6.25 전쟁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었다. 제목과 의도에 따르면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전쟁을 소재로 삼았지만, 어느 특정 사건을 소재로 삼지도 않았고, 작품 제목을 모르고 작품을 감상하면 이게 한국 전쟁을 표현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그림이다.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인 <게르니카>, <시체안치소>와 더불어 <한국에서의 학살>도 그 3대 걸작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화면을 좌우로 분할하여 왼쪽은 피해자 그룹, 오른쪽은 학살자 그룹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표현했다. 뒤쪽 배경에 있는 노란색과 초록색을 통해 전쟁의 아픔뿐만 아니라 후의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7. 마지막 열정
<칸느 해안>은 벽 한 면을 차지할 정도로 크기가 굉장히 큰 그림이다. 색채 때문인지, 화풍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작품을 한참이나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같이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던 팀원도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칸느 해안>을 꼽았다고 한다. 야자수 나무와 바다의 곡선 덕분에 내가 마치 칸느 해변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작품들을 다 감상하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 있었는데,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라는 말이었다. 테마를 넘어가는 중에 벽에 피카소가 했던 말들이 써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많은 물체들과 세상에 있는 많은 대상들을 그저 보고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대상들을 보고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는 말이 너무나 좋았고, 광고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 더 낫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게 광고뿐 아니라 삶에서도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예시로 예전에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릴 때 내가 지금 있는 방향에서 어디로 가는지 몰랐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청년이 그 불편함을 바꾸기 위해 겨우 화살표 스티커 하나로 방향을 붙여서 불편함을 해소해 화제가 됐던 사례가 있다. 피카소의 말을 보고 나니,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